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message).” - Marshall McLuhan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message).” - Marshall McLuhan

 

참고1> 미디어와 인간의 확장 - 이남표 (2002) 

 

이니스(Harold Innis)의 기술결정론

  1. 기술의 혁신이 사회의 변화를 초래하는 원동력이다.
  2. 여러 기술 중에서 특히 커뮤니케이션 관련 기술이 중요한데, 이는 인류의 기본적인 인식 능력의 확장 및 연장이다.
  3.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발전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니스의 미디어 결정론에서 핵심 개념은 미디어의 ‘편향성(bias)’이다.

시간 편향적 미디어(time-biased media) - 운반이나 수송이 어렵고 내구성이 강한 미디어로 기록과 보존의 특성이 있다.

공간 편향적 미디어(space-biased media) - 내구성이나 지속성이 약하지만 이동이 편리한 미디어로 정보 교환과 대중매체의 효과적인 활용이 특징이다.

 

이니스의 핵심 가정은 “진정한 권력이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능력”에 달려 있으며, 이는 오로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통제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정탁, 1998: 157-158)

 

미디어는 메시지다.

전통적인 시각은 미디어를 어떤 커뮤니케이션 내용의 통로나 용기로 보며, 따라서 용기보다는 내용을 우위에 둔다. 그러나 McLuhan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과는 별도로 미디어 자체가 지닌 내용을 강조한다.

 

전깃불(eletric lighting)은 순수한 정보(pure information)다. 그것은 메시지 없는 미디어다.(M,McLuhan, 1964: 8)

만약 사람들이 바퀴나 인쇄술이나 비행기가 우리의 감각인지 습관(habits of sense perception)을 진짜로 바꾸었는지를 의심한다면, 그러한 의문은 전깃불과 함께 끝난다. 이러한 영역에서, 미디어는 메시지이며, 전깃불이 들어오면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불빛이 꺼지면 세계는 사라진다.(M,McLuhan, 1964: 128-129)

 

McLuhan의 저서 「Understanding Media」의 부재는 “The Extensions of Man”

옷은 인간 피부의 확장이며 바퀴는 인간 다리의 확장이라고 그는 파악한다. “미디어는 인간의 신체와 감각들의 연장을 창발시키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망라”하기 때문이다.

 

핫 미디어(hot mediaum)/쿨 미디어(cool medium)

핫 미디어는 우리의 단일 감각을 높은 정세도로 확장시키는 미디어다. (...) 사진은 시각적으로 “높은 정세도”를 가진다. 만화는 “낮은 정세도”를 가지는데, 매우 적은 시각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화는 쿨 미디어, 또는 낮은 정세도를 가지는데, 귀가 빈약한 양의 정보를 받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핫 미디어는 참여도가 낮고 쿨 미디어는 참여도가 높거나 수용자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라디오와 같은 핫 미디어는 텔레비전과 같은 쿨 미디어와는 매우 다른 효과를 이용자에게 미친다.(M,McLuhan, 1964: 22-23)

 

*정세도: 메시지에 대해서 인간의 단일 감각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밀도로 데이터의 충실한 정도

*참여도: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메시지의 뜻을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 투입량의 수준

 

McLuhan의 인류 역사에 대한 관점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구어 형식에서, 인쇄 형식을 거쳐, 전자 형식으로 변천함에 따라 각각 인간 집단을 부족화(tribalization)에서, 탈부족화(detribalization)를 거쳐 재부족화(retribalizatiob)시켜 나간다"는 관점에서 파악한다.(김경용, 1997: 75)

 

McLuhan의 인류역사 구분 정리(김균, 1997: 110-111)

  1. 구어시대: 인간이 동시성과 순환성이 중시되는 귀의 문화(ear culture) 속에서 살며, 모든 감각의 사용을 통한 심층적인 경험을 한다. 여기에서는 과거 부족사회에서와 같은 상호 의식이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2. 문자/인쇄시대: 문자, 특히 인쇄술의 등장으로 나타난 시각적 인식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미디어는 인간을 소리, 신체적 접촉, 즉각적 반응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내성적이고 이성적이며 개인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결국, 인간의 삶은 인쇄된 문자의 모습을 닮은 선형적이고 인과적인 사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3. 전자시대: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전자시대의 인간은 최대한의 감각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전자 미디어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인, 파편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인 성격을 가진 문자 이전의 인간형을 부활시킨다. 따라서 세계는 다시 부족의 시대, 이른바 ‘지구촌(global village)’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미디어는 마사지이다(The medium is the massage).

오늘날 미디어가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를 “주무르고”있는가를 말하는 경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그 의미

테크놀로지의 효과는 의견이나 개념의 수준에서 나타나지는 않지만, 꾸준히 그리고 어떠한 저항도 없이 감각비율(sense rations)이나 지각유형(patterns of perception)을 바꾸어 놓는다. 아무 탈 없이 테크놀로지와 마주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가인데, 이는 그가 감각 인식의 변화를 깨닫고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M,McLuhan, 1964: 18)

 

 

참고2>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론: 이론과 사상 - 임상원, 이윤진(한국언론학회, 2002)

 

McLuhan은 기술결정론자는 아니다.

McLuhan이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기술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 미디어의 기술을 통해 인간, 커뮤니케이션, 문화, 문명에 대해 말한다.

 

McLuhan은 모더니티를 비판한다. 그 비판의 핵심은 활자화된 문자 즉 인쇄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의 생명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소외된 근대인과 획일화된 근대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상실된 커뮤니케이션의 생명력을 전자미디어가 복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전자미디어에 대한 기대의 근거이다. 

 

언어(language)와 말(speech)은 감각의 외화(外化)로 이는 “인간이 경험과 지식을 용이하게 운반하고 우리가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축적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다.” 언어는 그것이 경험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형을 한다는 의미에서 메타포이다. 번역을 하는 특별한 기술적 도구에 대해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는 감각의 거대한 확장이 ‘폐쇄적 체계’를 만든다는 점이다. 자연 상태로서의 우리의 감각들은 폐쇄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우리가 공유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부르는 경험 속에서 이 감각내용을 저 감각내용으로 끝없이 서로 번역한다. 그런데 우리의 확장된 감각들, 도구들, 기술들은 우리들의 5개 감각들을 폐쇄적으로 만들어 이들 감각들이 집합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하였다. 즉 감각들 간의 소외현상이 생겼다. 시각과 촉각 간에 시각과 음성 간에 갈등을 낳고 시각이 다른 감각들을 소외시켰다. 이것이 현대 문명이다.

 

구술문화적 접근방식(어셔 Abbot Payson Usher, 토크빌 Alex de Tocueville)

사건을 시각적으로 조망할 때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관점을 지니게 된다. 구술문화적 방식은 눈이 아니라 귀를 통해 인지할 때와 같이 ‘줄을 세우고’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동시에 수용’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Tocueville -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상호작용의 장’ 혹은 ‘혼합의 장’을 갖고 있다는 조건 때문이다.

McLuhan - '상호의존성'이라는 유기적 기능은 알파벳, 활자 문화에는 결핍되어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McLuhan은 인쇄와 근대를 연결시켜 비판한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 특히 인쇄로 인해 강화된 문자문화인 근대의 과정에 대한 역사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의 영향은 효과이론에서처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축적적인 것이다. McLuhan은 이를 “미디어가 지닌 구조화하는 힘”, 즉 잠재적아고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미디어의 힘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그간 모더니티 혹은 근대의 과정에 대한 많은 설명에서 미디어라는 차원이 배제되었음을 지적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변동에 있어서의 마디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로 놓는 것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인간과 인간간의 소통의 양식인 동시에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지각의 양식이자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조직하는 양식이다. 이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한 사회 혹은 한 시대의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줄기라는 말이다.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문화와의 관계는 그의 감각이론에 근거한다. 그의 감각이론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감각이 조화롭게 활용되는 감각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알파벳과 인쇄로부터 비롯된 근대의 시각적 서구문명이 갖는 정신적 편향과 그로 인한 폐해를 비판하는 토대가 된다. McLuhan의 감각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두 가지 지적 전통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철학 특히 그의 지각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게스탈트 심리학 및 이로부터 영향 받은 언어이론이다. 맥루한의 정적이고 공시적인 특징이 토마스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역사적이고 통시적인 측면은 게스탈트 이론에 연원을 둔다.(J.Stemps, 1995, 97)

 

아퀴나스는 지각이 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추론형식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세계에 정확히 부합하는 개념을 형성해야 하고 감각대상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지각을 활용해야 한다. 감각 가능한 세계 즉 ‘sensible world’는 일련의 복잡한 비율/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은 크기, 색깔, 재질과 같은 특질들의 배열(configuration)이다. 개념을 형성하기위해 감각들은 이러한 배열을 인식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감각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감각들을 통해 형성하는 개념을 기본 지식으로 생각한 것은 이성을 통해서만 신의 질서 즉 로고스를 인식할 수 있다는 플라톤적인 생각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그의 예술관에서도 나타나는데, 아퀴나스는 미를 인지적 능력과 연관시킨다. 아름다운 것들은 “볼 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미는 적절한 비례에 있다. 감각들은 자신의 고유한 종류에 부합하도록 적절한 비례를 가진 사물에게서 즐거움을 얻는데, 왜냐하면 “모든 인지적 능력들이 그러하듯이, 감각도 일종의 이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김혜숙/김혜련, 1995, 149-153)

 

오감을 통한 감각자극들은 분산된 데이터 단위들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혹은 지각적 게스탈트로서 지각된다. 많은 감각자극들로부터 통일된 하나의 지각을 끌어내는 것은(many-to-one translation) 아퀴나스가 통감각(common sense, sensus communis)이라 부른 기관으로 이는 감각간의 통역을 행하는 통일된 지각의 장소로 보편적 감각인 촉각을 통해 만들어진다.(J.Stamps, 1995, 102)

 

합리성을 촉각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McLuhan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성, 즉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논증이라는 합리성은 진정으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것이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 촉각이론은 McLuhan의 새롭고 유연한 지식이론의 핵심으로 그의 청각에 기초한 패러다임의 토대를 이룬다. McLuhan은 육체와 정신, 감각과 이성간의 오랜 분리와 후자에 의한 전자의 지배를 “시각화”의 결과로 보고 이들을 재해석하면서 “촉각성”의 복원을 통한 이들의 유기적 통합을 기대했다.

 

McLuhan에게 영향을 준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은 게스탈트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론이다. 그의 의문은 “왜 눈에 보이는 세계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민족들에 의해서 그처럼 서로 다른방식으로 표현되어 왔을까?”였다(E.H.Gombrich, 1972/1981, 21-49). 그에 의하면 지각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복잡한 감각적 선택들을 통해 잠재의식 차원에서 작용하는 가설형성 과정이다. 저기 있는 것을 그냥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특정한 감각자료에 초점을 맞춘다. 러스킨이 말한 것 같은 ‘순진한 눈(innocent eye)’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이 일종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선택이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 것이기 때문에 지각은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조건은 무엇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가? 곰브리치에 의하면 그것은 문화의 표현 매체에서의 기술적 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근대의 과학적 재현으로의 예술적 재현의 변화를 도식적인 것(schematic)으로부터 재현적인 것(representational)의로의 변화, 즉 ‘창출’(making)에서 ‘상응’(matching)으로의 변화로 보면서,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물에 대한 예술의 (혹은 인간의) 모사적 관계(mimetic relation)가 파괴되고 관계들의 질적인 차원이 배제되었음을 비판한다. 이는 구술사회에서 문자사회로 변화라는 McLuhan의 연구와 유사한 것이었다.

 

인간은 감각자료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인감과 세계를 연결해주는 감각의 확장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특정한 사회의 지배적인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균형에 영향을 주는 조건이 된다. McLuhan의 미디어는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화폐, 교통수단 등을 망라한 거의 문화에까지 확장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이러한 미디어들이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둘러싸고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 기반, 환경을 이루며 인간의 감각과 상호작용한다. McLuhan의 감각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이전까지 미디어에 대한 접근방식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즉 미디어의 종류에 관계없이 그 내용(메시지)에 대한 시비나 그 효과에 대한 평가등이 주를 이루었던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을 비판하고 미디어 자체가 인간과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돌리도록 한 것이다.

McLuhan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을 외화한 모든 것이 미디어이다. 따라서 언어와 말 또한 “감각의 외화이거나 음성화로 이는 인간이 경험과 지식을 용이하게 운반하고 우리가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축적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McLuhan, 1962/2001, 20), 즉 미디어이다.

 

 

 

* 이 정리는 참고 논문(서적)을 것으로 정리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잘못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반드시 본 읽고 연구자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길 바란다.

 

comment>

위의 참고2>의 내용은 McLuhan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위한 정리이다. 이 외에 언어의 ‘선형적 시각화’에서 공감각적인 ‘촉각’으로의 회귀에 대한 이야기와 ‘글로벌 빌리지(global village)’에 대한 이야기는 원래 논문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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